진짜 사나이가 누군가. 그것은 `의리에 살고 의리에 죽는다`이다. 조직사회건 깡패집단이건 간에 이 의리 때문에 살아가는 게 보통이다.
의리란 사람으로서 마땅히 지켜야 할 바른 도리를 말하고 남과 사귈 때 지켜야 할 도리라는 뜻을 지니고 있다.
또 선거철이 다가왔다. 어찌된 영문인지 철새가 움직일 때가 아닌데 이리저리 기웃거리는 족속들이 들어 있기에 하는 말이다.
이광수가 쓴 `마의태자`에 보면 다음과 같은 문장이 주위를 환기시킨다. `의리 없는 놈의 친구가 되기보다 의리 없는 친구는 언제 배반해 나를 해할지는 몰라도 의리 있는 원수는 내가 의리를 지키는 동안 내 의리를 알아준다`고 의리를 지킨다고 하지 의리를 한다는 말이 없다.
그만큼 의리는 중요하고 믿음을 주는 행위의 하나가 아닐까 생각해 본다.
의리명정(義理明正)하고 견리사의(見利思義)한다는 논어의 말이 생각났다. `의리가 밝고 바르며 이익 되는 것을 보면 먼저 의리에 합당한 가를 생각하라`는 뜻이다. 견리사의는 안중근 의사께서 즐겨 쓰신 문장이다.
우리 속담에 `도둑에게도 의리가 있고 땅꾼에게도 꼭지가 있다`고 말했다.
아무리 못된 짓을 하더라도 반드시 의리를 지켜야 하고 그 중에도 의리는 주어진 사명을 다할 것임을 묵시적으로 말해 준다.
논어 양화편에 보면 공자의 간절한 말씀이 담겨 있음을 본다.
유용무의위란(有勇無義爲亂). `오직 용감만 하고 의리를 모르면 세상이 어지러워진다`고 갈파했다.
의리라는 것은 남성 여성을 떠나 이러한 사고력이 없으면 이 혼탁한 사회를 지탱하기 어렵다.
어제의 친구가 오늘의 적이 되니 그런 정치세력이 아니라 가치관의 혼돈이 없는 세상을 꿈꾸는 그런 사회상을 만들어 나가야 한다.
누구를 막론하고 세상 모든 사람들은 의리를 잘 지키는 사람을 좋아하지 표리부동한 사람을 싫어함은 동서고금을 통해 봐왔다.
마의태자는 다시 계속된다. "너는 의리를 위해 죽는 졸병이 될지언정 사욕을 위해 사는 영웅이 되지 말라"고 계속 이어진다.
바로 의리를 잘 지키라는 말을 내포하고 있다.
사람다운 행동은 그야말로 누가 뭐라 하더라도 의리 밖에 없다. 의리를 지키는 사람은 무엇을 맡겨도 그 임무를 훌륭히 수행할 수 있을 것이다.
"비록 많은 것을 들어 알아도 자기 체험이 없으면 그것은 마치 장님이 등불을 들어 남을 밝혀 주면서 자기 앞은 보지 못하는 것과 같다"고 선인의 말씀이 뇌리를 스쳤다.
의리는 괜스레 있는 게 아니라 지키려고 있는 것이다.
의리를 지키지 않으면 패가 망신한다.
이번 `코로나19`를 보면 아주 작은 곳에서 시작해 전 세계에 퍼져 말하자면 난리법석을 떨고 있다.
`호미로 막을 것을 가래로도 못 막는다`는 우리 속담이 하나도 틀림이 없다. 속담도 이를 두고 한 말인 것 같다.
우리나라도 벌써 확진 환자가 수십명으로 늘었다. 특히 31번째 확진 환자는 외국 여행 간 일도 없고 그저 평범하게 지낸 사람인데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 알 수가 없다.
서울 남산에 올라가면 큰 바위에 안중근 의사가 쓴 글이 두 개 있는데 이 중 한 개가 `견리사의(見利思義) 격액수명(見厄授命)`이다.
이(利)를 보면 의(義)를 생각하고 위태로운 것을 보면 목숨을 바치라는 뜻이다.
이 여덟 자에서 안 의사의 나라사랑 정신을 읽을 수 있고 의리가 얼마나 지중한가를 단적으로 표현했기에 안 의사의 호기도 봤고 애국애족의 혼이 깃들어서 그런지 폐부를 찌른다.
안 의사는 일찍 도산 안창호 선생의 연설을 듣고 크게 감화를 받아 구국충정의 큰 뜻을 세웠다고 전한다.
그가 이토 히로부미를 하얼빈 역사에서 쏜 것은 우리 겨레의 한을 풀어주기 위함이었음을 사가(史家)들은 말한다.
비록 낯선 땅인 이국 여순감옥에서 사형을 당하면서도 당당했고 조선의 원흉을 죽였지, 개인적으론 아무런 원한이 없다고 말했다. 그래서 의리는 더욱더 중요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