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부산역 근처에 있는 지체부자유아원에서 활동하는 원생들을 위해 강의를 한 적이 있다.
비록 몸은 불편하고 말소리는 어눌했지만 경청하는 자세나 눈빛은 그 누구보다도 초롱초롱하게 다가왔다.
몸은 불편해도 마음은 어느 젊은이 못지않게 왕성한 필력을 자아내었다.
나는 그들에게 심전경작(心田耕作)을 강조했다. 즉, 마음밭을 일궈라는 주문이나 다름이 없었다.
논밭 가는 것도 중요하지만 마음밭을 가는 것이 너희들의 몫이라고 말하자 눈시울이 붉어지는 원생들도 있었다.
`바위`라는 시제를 내어 적어오라고 했는데 강아무개라는 젊은이의 시는 참으로 나에게 있어 시사해주는 것이 많았다. 마치 유치환 시인의 바위를 보듯 힘차게 다가왔다.
바위
우람하고 당당한 바위를 떠올린다/모양은 제각각/생긴 모습대로 살아온 힘
누구를 위함도 아닌데/항시 그 자리에서/지나는 구름이나/사람 그리고 동물을 보면서/아무런 생각없이/빈 하늘을 우러런다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다녀도/말없이 앉아 있는 모습/내 안에서 살고 있다
바위/변하지 않아 그대가 좋다
그렇다. 마음의 밭을 갈면 모든 걸 즐길 수 있는 힘의 원천이 된다. 자연을 사랑하고 또한 이를 아끼게 되고, 내 이웃을 항시 생각하게 되는 시간을 가진다.
사람은 무에서 유를 창조했고 항시 유기체적 입장에서 사물을 보게 된다.
옛말에 `낙이불음(樂而不淫) 즐기되 빠지지 말라`는 가르침은 언제 들어도 신선하게 다가온다.
몸이 자유스럽지 못하고 신체가 부자연스러워도 평범한 사람보다 더 노력하고 진솔한 면학의 분위기는 강사의 강의를 더 알차게 해주고 남음이 있다.
누구를 막론하고 과하면 피로해지기 쉽고 즐기다보면 쾌락의 나락에 빠져들고 음란해진다.
도박에 빠지면 그 도박에 도취돼 본전 생각때문에 그 늪을 헤어나오지 못한다.
그래서인지 어른들은 지족(知足)을 가르쳤다. 다시 말해 자기 생활에 만족할 줄 아는 정신과 함께 자신의 처지를 뒤돌아보는 계기를 삼아야 한다.
일찍 공자는 `지자요수(知者樂水) 인자요산(仁者樂山)`이라고 설파했다.
지혜 있는 사람은 물을 즐기고 어진 사람은 산을 즐긴다. 정말 맞는 말이다.
물은 융해돼 모든 걸 흡수해 항시 새로움을 나게 하고 산은 언제나 변함없이 그 자리에서 사람을 맞이하니 얼마나 좋은가.
산에 오르면 도심의 광경이나 아랫마을이 눈속으로 들어오고 넓은 바다 역시 변함없이 푸르름을 품고 있지 않은가.
지체부자유아의 바위라는 시에서 배우는 것이 많다. 산과 물은 항시 함께 함으로써 아름답게 세상을 만든다.
우리는 산에서 배우고 물에서 배운다. 그게 마음밭을 가꾸는 힘의 원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