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충일 아침에 태극기를 반쯤 내린 채 현관 앞에 달았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태극기를 단 곳이 내집 골목 라인에는 하나도 없었다.
오전 10시가 되자 사이렌 소리가 빈 공간을 메웠다. 약 1분간 그렇게 시작돼 끝이 났다.
지금 우리가 이렇게 굶주리지 않고 사는 원인은 뭐니 뭐니 해도 순국선열의 희생이 따랐기 때문이다.
이날 문재인 대통령은 김원봉에 대한 서훈에 대해 적나라하게 표현했다.
약산 김원봉은 6ㆍ25 전쟁을 일으킨 장본인이고 동족 여러 수만명을 희생하게 한 자유대한민국을 보아서는 원흉이자 매국노나 다름없다.
이러한 사람을 치켜세우고 있으니 지하에 잠드신 애국애족 선열들에게 무어라 말씀드려야 할지 도대체가 알 수 없는 일이다.
승리에는 영광이 있고 감격과 희열이 따른다. 만약에 1950년 6월 26일 오전 1시 10분 대한해협해전에서 우리 해군 백두산함이 600여명의 정예부대가 승선한 북괴군 함정을 괴멸시키지 않았다면 그 당시의 정세가 어떻게 됐는지 아무도 모를 일이다.
그렇다. 승리는 용기의 산물이며 인내력의 소산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이게 바로 악전고투 전쟁 끝에 얻은 결과물이다.
그래서 승리자의 머리에 푸른 월계관을 씌워주고, 목에는 금메달을 걸어주고 가슴에는 꽃다발을 안겨 주고 우뢰와 같은 박수와 함께 환호를 보낸다.
승리는 빛나는 것이고 위대하며 영광스러운 것이다. 그런데 전교조는 지금도 6ㆍ25 전쟁을 북침이라고 우긴다. 도대체 어느 나라 사람인지? 참으로 한심하기 그지없다.
본 위원은 민주공원에 모셔진 현충탑에 헌화하고 `顯忠日`이란 시를 읽어 내렸다.
현충일 아침 태극기를 달고
민주공원에 올라
호국영령에게 헌화를 합니다
긴 나팔소리와 함께
오래도록 묵념을 올렸습니다
대한해협해전 때 산화하신
두 분의 병사를 모신 승전기념탑 아래
우리 해군의 늠름한 기상도
가슴깊이 새겼습니다
바람이 불어오거나 불지 않아도
아카시아 한 가지로
이 세상의 산빛을 받들고 섰습니다
찻잔 속에 어리는 호국영령의 눈빛
빗나가지 않았고
이제 이념이 아니라너와
내가 기대앉던 꽃자리마다
이 세상 가장 아름다운 동행으로 갔으면 합 니다
내 마음 달아오르게 하는 나팔소리를 따라
이름 모를 새때
하늘을 향해 힘차게 날아 올랐습니다
호국영령이시여
당신의 붉은 피 식지않게
가슴에 담고 그렇게 지내겠습니다
현충일 아침에 호국영령님을 새기는 일은 그렇게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6ㆍ25의 노래` 중 `아아 잊으랴 어찌 우리 이 날을`로 시작되는 가사 속에는 당시 핏발치는 호국용사들의 피빛어린 혼이 담겨 있다.
그런데 이 동네 저 동네 둘러보아도 태극기 단 집이 없다. 얼마나 이상한 나라인가.
하루쯤 노는 날로 치부해 버린 탓인가.
다시금 전쟁을 회상하고 새겨보는 현충일 아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