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노이 한복판, `바딘광장` 하노이 시의 최대 광장인 그곳은 베트남 통일의 지도자 호치민(1890~1969년)이 감격스럽게 사자후를 터뜨린 곳으로 유명하다.
1945년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일본 천왕 히로히또가 연합군에 항복한 며칠 후인 8월 19일 호치민은 구름같이 운집한 수많은 관중들을 향해 외친 곳이 바딘 광장이다. 그는 이곳에서 "모든 사람은 평등하게 태어났다. 창조주는 우리에게 불가침의 권리와 생명 자유, 행복을 주었다"라고 했다.
필자는 잠시 펜을 놓고 눈을 감고 호치민이 누워있는 바딘 광장을 떠올려본다. 야자수. 망고. 파인애플이 방금 비를 맞고 깨어나 기지개를 켜는 듯한 광장은 평화스럽기만 하다. 지하에 묻히지 않고 연일 구름떼처럼 모여드는 참배객을 앞에 생시처럼 누워서 잠든 그를 본다. 그는 죽었지만 시민들에게는 살아있는 영웅이었다.
그렇다면 호치민은 어떤 사람인가? 그는 인생의 전부를 통해 베트남을 식민 지배로부터 해방시키려고 피와 땀과 운명을 바친 사람이다. 100 년 간 계속된 프랑스 식민지 시절이 그랬고, 일본과의 싸움에서 그랬고, 미국과의 전쟁을 하면서도 그의 불타는 애국심은 그치지를 않는다. 그래서 베트남 사람들은 이렇게 말한다. "호 아저씨(호치민 애칭)는 사회주의자, 공산주의라기보다는 민족주의자였습니다. 베트남 민족주의자!"라고 했다. 그는 그만큼 베트남 국민들의 마음 속 사람이다.
호치민은 평생 독신으로 산 사람이다. 살아생전 그가 남긴 말은 너무 유명하다. "나는 조국과 결혼했다"라고 말하곤 했다. 그것은 국민들은 아내를 대하듯 아끼고 사랑한다는 것이 아닐까? 제2차 세계대전을 치를 때는 아시아 반식민지운동의 기수, 20세기 한복판에서는 베트남 공산주의 운동의 지도자로 전 세계에 알려진 베트남민족의 영웅이요, 대통령인 호치민은 이제 `베트남 민족운동`의 지도자, 나아가 남북 베트남 통일의 깃발로 휘날린다.
호찌민은 그가 공산주의자, 사회주의자였기 때문에 그의 조국 인민들로부터 오늘날까지 추앙을 받고 흠모를 받은 것이 아니다. 그는 이데올로기라는 개념 이후 역시, `민족`을 상위개념에 둔, 그가 추구하는 모든 일에 우선을 둔 민족주의자라는 사실이 그에게 걸 맞는 호칭일 것이다. 물론 정확하게 말한다면 그는 민족주의적 사회주의가 아니라 `사회주의적 민족주의자`이다.
호치민의 본명은 `응엔신꿍`이다. 그는 식민지 전쟁기간 동안 전략전술 때문에 많은 가명을 가졌는데 그중 잘 알려진 가명이 쿠익(애국자 구엔)이다. 다음으로 그의 정식 이름이 돼버린 `호치민`이라는 이름이 그것인데 이 말은 `깨우는 자`란 뜻을 담고 있다.
중학교 교사, 기술훈련생 견습생, 프랑스 증기선의 요리사, 정원사, 청소부 카바레의 웨이터, 사진 수정사, 보일러를 관리하는 화부(火夫) 등을 거치면서도 공부를 게을리하지 않은 대통령 호치민, 그리고 그가 살아있을 때도 그렇지만 지금도 그는 `이웃집 아저씨`로 불린다. 베트남 민중에게 그가 얼마나 친숙하게, 순수하게, 다정하게, 그러나 단호하게, 다가가 있는지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조국 베트남의 민족 해방을 위해 상대국과의 회담, 논리적 싸움을 위해서 그는 여러 나라의 말들을 터득했는데, 영어, 프랑스어, 중국어, 러시아어, 포루투칼어 등에도 능통했다. 여기에다 중국에서의 감옥생활 기간 중에 써낸 옥중(獄中) 시, 옥중일기(獄中日記)는 많은 이에게 위안과 용기가 된다. 필자는 호치민이 시인임을 발견할 수 있다.
많은 이들이 사랑하는 김남주 시인이 번역한 시(서시) 한 편을 감상하면 그는 영혼의 자유를 누리는 가운데 심지가 굳은 사람임을 알 수 있다.
이 몸은 비록/옥중에 갇혀있지만/정신은 결코/감옥에 구속되지 않네/ 큰일을 하려면/정신을 더욱 크게 가져야지
호찌민은 이류 역사상 `3대전투`로 손꼽히는 `디엔 비에프 전투`에서 4만 5,000명의 프랑스 식민지 군대를 격파시킨 영웅 보구엔 지압과 충실한 친구 팜 반동을 양 어깨로 삼은 행운의 지도자이기도하다. 비록 `통일 베트남`을 눈앞에 두고 숨을 거둔 그이지만 베트남이 지구상에 존재하는 한 인류의 역사가 계속되는 한 통일베트남 민족주의의 영원한 지도자로 살아 숨 쉬고 있을 것이다.
그것을 증명이나 한 듯이 오늘도 자신이 살아있는 사람처럼 미라로 잠들어 바딘 광장 `호치민 묘지`에는 수많은 참배객들의 발길이 끓어지질 않는다.
그가 유언으로 남긴 말은 분단국가에 사는 우리에게 신선한 충격이 아닐 수 없다. 그의 유언을 살펴보면 그가 얼마나 나라에 대한 존경심과 애민심(愛民心)이 강한지 알 수 있다. 베트남 사람들은 호치민의 삶과 말은 일상생활철학의 푯대 혹은 지렛대로 삼는다. 국민들은 모두가 일심(一心) 같이 우러러보는 지도자를 오래오래 기억하고, 정신적 지주로 속 깊숙이 간직하고 산다는 것은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 베트남을 여행한 사람들은 일심(一心)으로 말한다. 호치민이야말로 `진정한 민족주의자`라고 한다.
`조국과 결혼`한 호치민은 베트남 국민들의 가슴속에 영원불변의 존재다.